지난 10월에 “제조업이 아닌 다른 산업의 PI 프로젝트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지난주부터는 또 다른 산업으로 자리를 옮겨 새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CO보다 PS의 영역이 많아, 개인적으로 새롭게 배울 거리들이 많아서 기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가면 언제나 초반이 힘들어요. 프로젝트 전반의 상황과 맥락, 이슈를 빠르게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공부하고 이해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과업을 제쳐두고 공부만 할 수는 없으니, 이 부분이 참 어렵습니다.
게다가 초반에 준비 없이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면 고객사를 비롯 여러 관계자에게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고, 그건 본인에게 가장 안 좋죠. 리스크가 되니까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저는 이럴 때일수록 철저한 계획과 집중적인 실행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야근으로 시간만 길게 잡는 방식이 아니라, ‘온전한 컨디션으로 최대한 집중해 일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일반적으로 “힘들고 어려울 때는 야근으로 커버해야 하는 것 아냐?”는 생각을 많이 하시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온몸을 풀컨디션으로 집중해서 정리하려면 야근으로는 오래 유지할 수 없어요. 생산적이지도 않고요.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야근을 줄여야 한다고 봅니다. 충분한 수면과 운동으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해요. 제가 쓰고 있는 몇 가지 스킬을 정리해보겠습니다.
1. 자료를 보는 것보다 직접 작성하는 게 더 빠를 수도 있다
"무언가를 보는 것보다 만드는 게 시간이 더 걸리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작성하는 게 더 빠른 길이다. 그럼 작성은 어떻게 하는가? '구조화'해서 해야 한다. 구조화는 크게 ‘조직화’ 와 ‘정교화’ 로 나눌 수 있다.
1. 조직화
- 먼저 소화해야 할 과제 범위를 정한다.
- 범위를 좁힘으로써 대상으로 삼을 항목(예: 비용, 사업부 등)의 수를 줄이고, 각 항목에 번호를 매긴다.
(예를 들어, 비용을 종류별로 1. 일반비용, 2. 연구개발비, 3. 시설투자비로 구분하고, 사업부 특성에 따라 1. 단기용역, 2. 장기공사, 3. 디지털산업처럼 구분할 수 있다.)
(넘버링을 하는 게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조직화와 암기에 도움이 많이 된다) - 조직화는 전체 숲을 한눈에 조망하는 것에 가깝다.
2. 정교화
- 여러 자료를 조합해 간단한 설명을 직접 작성한다.
- 기존 지식을 활용해 새 정보를 분해하고 재구성한다. (이때 기존 지식과 경험이 많다면 속도를 줄일 수 있다)
- 단순히 복사해 붙이는 게 아니라, 나만의 언어로 풀어 쓰는 것이 중요하다.
- 이해가 되지 않거나 자료가 부족한 부분은 가설을 세우고 추론해본다.
- 정교화는 조직화와 번갈아 진행하며, 조직화가 ‘숲을 보는 과정’이라면 정교화는 ‘나무를 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1) 이렇게 나만의 언어로 정리해놔야 나중에 발표를 하거나 회의를 할 때 이해한 내용을 말할 수 있게 된다. 그저 써있는 것을 그대로 읊는 것과, 내 언어로 이해하는 건 여기서 달라진다.
(2) 가설을 세워 추론한 내용도 회의나 인터뷰, 메신저를 통해서 담당자와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확인한다. 대화를 통해 나의 수준과 상대방의 수준을 동시에 알 수 있고, 무엇이 더 이슈가 되는지 파악할 수 있다.
(3) 이런 방식으로 정리할 때, 이왕이면 프로젝트 산출물 작업과 병행하면 효율이 더 높다.
나는 (1) 직접 해보며 터득한 것, (2) 주변에서 하는 방식을 보고 배운 것, (3) 여러 책을 통해 익힌 내용을 종합해 이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참고했던 책으로는 『이해의 공부법』, 『무조건 합격하는 암기의 기술』, 『최적의 공부뇌』 같은 공부법 관련 서적과, 『논리의 기술』, 『로지컬 씽킹』, 『로지컬 라이팅』, 『맥킨지 논리력 수업』처럼 컨설팅 관련 논리학 서적 등이 있다.
2. 단축키든 툴이든 외우고 몸을 써서 가장 빠르게 움직인다.
새로운 툴을 배울 때는 단축키를 먼저 외우고, 반복해서 사용해 체득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SAP의 경우, 일반 트랜잭션뿐 아니라 IMG 티코드까지 모두 외우려고 한다.
누군가는 “IMG 티코드까지 굳이 외울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한 번 외워 두면 해당 내용과 프로세스가 머릿속 서랍에 꼬리표를 달고 저장되는 효과가 있다. 그 덕에 훨씬 빠르게 불러낼 수 있다.
또한 업무자동화를 위해 파이썬 같은 툴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나 역시 처음에는 파이썬을 잘 몰랐지만, 챗GPT의 도움을 받으면 생각보다 쉽게 구현할 수 있다. 이를 이용해 파일 취합이나 엑셀 정리 같은 반복 작업을 단축시킬 수 있다.
챗GPT는 요즘에는 정말 광범위하게 활용한다. 이건 점점 필수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차를 타고 달리는데, 혼자 자전거를 타고 갈 이유가 없다고 본다. 정말, 말도 안 되게, 압도적으로 빠른 방식이니까.
3. 체계적이고 자발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단지 체계적으로 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모습을 이해관계자에게 보여 안심시킬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그들로부터의 불필요한 압박을 줄일 수 있고, 나 자신도 부담을 덜게 된다.
내 경험상, 체계적으로 일한다는 느낌을 주려면,
1. 단기 및 장기 업무 계획을 세우고, 계획과 진척 상황을 관계자에게 주기적으로 공유한다.
2. 요청받은 사항은 절대 잊지 말고 피드백한다. 당장 처리가 어렵다면 “어느 시점쯤 가능하다”는 식으로라도 반드시 알린다.
3. 업무가 직접적으로 연결된 사람에게는 수시로 찾아가서 진행 사항과 이슈를 공유한다. 이를 너무 격식을 갖춘 ‘보고’라고 생각하기보다, 가벼운 ‘작전 타임’처럼 자주 진행하는 편이 좋다.
이렇게 해야 내가 일을 리드할 수 있고, 그래야 오래 일해도 덜 피곤하다. 프로젝트 전체의 리더가 따로 있어도, 세부 사항만큼은 스스로 주도권을 갖는 편이 낫다.
4. 야근은 하지 않는다.
야근은 하지 않는다. 특히나 신경쓸 일이 많고 바쁠 때일수록 오히려 더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럴 때야말로 정말 풀컨디션으로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스피드와 퀄리티를 유지할 수 있다.
나는 8시간 이상 자려고 노력하고, 웬만하면 매일 1시간 이상 운동(근력운동과 러닝)을 한다. 40~50대부터는 이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날 것이라 믿고 있고, 현재의 집중력과 창의력도 유지해준다고 본다.
하지만 한국 문화에서는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고, 내게도 큰 장벽이다. 야근을 성실함의 지표처럼 생각하는 분들(특히 윗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걸 거스르고 정시 퇴근한다는 건 내가 뺀질이로 보일 수 있다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그런 리스크를 상쇄하기 위해서 퀄리티 있는 산출물과 피드백을 보이는 거긴 하지만...
아무래도 산출물은 늦게 가시화되는 반면, 당장 늦게 자리에 앉아 있는 야근은 즉각적으로 눈에 드러나는 것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치야근을 선택하는 것 같다.
나도 사실 늘 이게 힘들다. 지금까지는 시간이 지나면 신뢰가 쌓여 무난히 넘어갔지만, 언젠가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될지 가끔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야근이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자리에 앉아 있지만, 정말 형편 없는 퀄리티와 볼륨이 나오는 경우도 많이 봤기 때문이다. 특히나 우리 같은 지식노동이라면 더더욱 그렇다고 생각한다.
정리하자면, “야근으로 시간을 늘려 커버하는 방식”보다, “풀컨디션을 유지하여 짧은 시간에도 집중력과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이 훨씬 낫다고 본다. 특히 프로젝트 초반처럼 체계적인 준비와 실행이 동시에 필요한 시점에야말로, 이러한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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